골드바흐 Christian Goldbach, 1690~1764
‘골드바흐의 추측’을 비롯해 정수론의 발전에 공헌한 수학자다. 172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제국 아카데미에서 수학,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다. 3년 뒤 표트르 2세의 개인교사가 되어 모스크바로 갔고, 1742년부터는 러시아 외무부에서 일했다. 1742년 스위스의 수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에게 뒷날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될 추측을 처음으로 편지에 적어 보냈다. 편지에서 그는 첫째 모든 짝수 자연수는 두 소수의 합과 같으며, 둘째 모든 자연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가설은 10만이 조금 넘는 모든 짝수 자연수에 대해서는 입증되었으나, 아직도 완전히 증명되지는 않았다. 두 번째 가설은 1937년 소련의 수학자 이반 비노그라도프가 부분적으로 증명했다. 골드바흐는 또 곡선이론, 무한급수, 미분방정식의 적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골드바흐의 추측 Goldbach's Conjecture
수론에는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않는 유명한 가설이 많이 존재한다. ‘골드바흐의 추측’역시 이에 속하는 것으로 현재까지도 증명되지 않고 있다. 1742년 골드바흐는 짝수들을 나열해 놓고 이런저런 계산을 하던 중 모든 짝수는 소수 2개의 합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4=2+2, 6=3+3, 10=5+5, 12=5+7, 50=19+31 등과 같은 합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스위스 최고의 수학자 오일러에게 편지를 보내 이것이 일반적인 성질인지를 물어보았다. 오일러는 골드바흐가 말한 명제를 2개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①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② 5보다 큰 모든 홀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골드바흐의 추측’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첫 번째 명제다. 그리고 두 번째 명제는 ‘골드바흐의 두 번째 추측’ 또는 ‘골드바흐의 또 다른 추측’이라고 알려져 있다. 오일러는 골드바흐의 추측이 옳다고 확신했으나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두 번째 명제는 1937년에 러시아의 정수론자 이반 비노그라도프가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첫 번째 명제에 대한 증명에 있어서 가장 최근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긴 사람은 중국의 수학자 첸 징런으로, 그는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하나의 소수와 2개의 인수를 갖는 합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증명했다.
1998년에 슈퍼컴퓨터로 400조까지는 이 추측이 참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어느 누구도 골드바흐의 추측에서 어긋나는 짝수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골드바흐의 추측이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다. 수학에서는 아무리 예가 많은 명제일지라도 증명할 수 없으면 참되 명제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소수의 문제가 수의 구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수학소설 골드바흐의 추측)
by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